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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3-11/ 행복한 만남, 풍성한 감사[옥한흠목사]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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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 지도자 가운데서 가장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 누구냐? 하고 물었을 때 남아공의 전 대통령이었던 만델라라고 하는 견해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탁월한 인물로 지금도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27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나서 76세에 대통령이 되어서 제임 기간 동안 남아공의 뿌리깊은 흑백간의 문제를 화해와 용서로 풀고 그 것 때문에 나중에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참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임 설교를 하면서 저 같은 졸부가 역사에 길이 남을 어떤 위인을 거론하면서 무슨 말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웃스운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가소롭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네가 그분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하나 배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면서 자기가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할 일을 분명히 알았다고 합니다. 내가 해야될 일은 수 백년간 묵고 묵어서 정말로 철천지 원수지간이 된 흑인과 백인, 백인과 흑인 사이을 화해 시켜서 나라를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이고 하나님이 네 개 주신 소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해야 되지만 현재 남아공에 싸여 있는 여러 가지 경제문제, 사회문제는 내 능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렇게 판단하고 아직도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도 연임, 연임, 연임으로 더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해 버리고 남아 있는 3년 동안 준비된 후임자를 키웠습니다. 그가 바로 지금 대통령으로 있는 ‘타버움베킬’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정한 때에 미련없이 권좌에서 물러났고 자신을 용달보다 국가의 용달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서 위대한 결단을 내렸는데 이 태도가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만델라의 태도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바로 분별하는 것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실험하면서 냄새나는 마지막을 고하는 것은 정말로 추악한 일이라는 것을 제가 그를 통해 배웠습니다.

세상 정치 지도자도 이렇게 하는데 여러분 세상국가하고 교회하고, 교회하고 세상국가하고 비교가 됩니까? 교회가 무엇입니까? 장차 우리 앞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만삭된 모습입니다. 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우리에게 임하였구나?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릴 그 의의 나라, 거룩한 나라, 찬양의 나라, 행복의 나라가 우리 눈앞에 임하였구나? 하는 것을 교회를 통하여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만삭된 모습입니다. 교회는 이런 용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있었다가 없어지고 없었다가 있어지는, 흥했다가 망하는 세상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도 이렇게 대단한 용단을 내려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책임진 내가 세상 지도자 보다 못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에게는 교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교회가 더 중요했습니다. 가정보다 교회가 더 중요했습니다. 제 꿈보다도 교회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성령께서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사실을 계속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니 정말 나이가 든 것 같습니다. 몇 일 전에 이제 만65세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철도 공짜로 타고 버스도 공짜로 탈 수 있도록 한달에 5만원씩 준다고 합니다. 그것을 들이니 약간 어슬프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나라 잘 살게 되었구나. 늙었다고 교통비를 주는 것을 보다니 그래도 살맛 나는 나라가 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기는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성령께서는 사랑의 교회 내일과 건강과 부흥과 용광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자꾸 눈앞에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보다도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계속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늙으면서 교회도 함께 늙는 것을 주님께서는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있었기에 제가 4년전부터 이 교회의 내일을 책임 질 수 있는 후임자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 9월달 우리교회에 오정현목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오시자 마자 여러분들의 얼굴과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 그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오목사님의 표현대로 우리의 영혼의 세포가 춤을 추는 것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런 아름답고 기막힌 현상을 보면서 내가 한 5년은 더 빨리 물러날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특새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특새의 주제곡이 저 자신의 주제곡이 되었고 제 자신의 18번 찬양이 되었습니다. ‘주의 은혜 이곳에 가득해, 주의 영광 이곳에에 가득해, 주의 응답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저도 모르게 이런 곡을 계속 부르면, 제 눈이 이슬이 맺히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의 소낙비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평년 같으면 년말이면 매년 예배출석 증가수가 약800~1,000명 수준입니다. 매년 이렇게 증가해 왔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3,000명이 넘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새로운 봄을 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은혜 안에 춤을 추는 교회를 남겨 놓고 떠나는 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목회자인가 생각합니다. 여러분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저의 마음을 아무도 읽지를 못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갇혀있습니다. 갇혀있으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마음에는 감사가 넘쳤습니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3,4절을 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간구 할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 요즘 현대 성경변역에는 이 두절을 이렇게 다시 기록해 두었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기쁨에 넘쳐 여러분을 위해 기도를 올립니다.’ 실감이 나죠? 그래서 감옥에 앉아 있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때마다 생각하는 추억 그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넘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저에게 묻습니다. 특별히 기자들이 저에게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그래도 초창기부터 애지중지 해서 교회를 오늘까지 키웠는데 떠나실려니 마음이 진짜 섭섭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인간적인 섭섭한 마음, 허전한 마음도 구석에 있지만, 그것은 하찮은 것이에요. 저에게는 더 큰 기쁨이 있습니다. 더 큰 감사가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저에게 성도들을 만나고 25년 동안 달려왔다고 하면 그들을 못 믿겠다는 듯이 저를 쳐다 봅니다. 믿거나 말거나 저는 상관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3가지 감사하고 기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로 바울은 무엇을 기뻐하고 감사했느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보며 복음을 교제를 나룰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잠깐 본문을 보셔야 합니다. 복음의 교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는 그날부터 약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다음에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 말을 짤막하게 단축시키면 복음의 교제를 나누게 함이라는 말입니다.

이 복음의 교제라는 말은 ‘코이노니아’ 말인데요. 굉장히 넓은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 의미가 광범위합니다. 이 세상에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부부관계입니다. 이 부부 관계가 서로 나누는 관계도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또 동시에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행위까지 도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그 의미가 굉징히 넓은 의미인데 여기서 복음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하면 바울이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지 않습니까?

그 때 빌립보의 전도를 받고 예수 믿었습니다. 그때 자주장사 ‘루디아’가 전도를 받고 예수 믿었습니다. 귀신들린 여자가 예수 믿었습니다. 감옥에 가서 쇠고랑을 차고 앉아 있을 때 그 날 밤 하나님께서 특별히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용서함을 받는다는 놀라운 은혜를 그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제입니다. 복음의 교제입니다. 한 사람은 전하고 한사람은 듣고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면 이것이 복음의 교제입니다.

그뿐입니까? 여러분 예수 믿게 되자 빌립보 교인들이 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한 하나님, 한 예수님, 한 성령님을 믿는 하나의 믿음,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은 끊을 수 없는 공동체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교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수 믿고 나서 한 공동체를 이룬것만 아니라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래 가지고 핍박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돌아와서 빌립보 교회가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에 자기 자신을 던진 것입니다. 이것도 복음의교제입니다. 이런 복음의 교제를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10여년 나눈 것을 생각 할때 바울의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여러분 지난 25년을 우리가 돌아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의 교회를 통해서 복음의 교제를 나누었고 지금도 나고 있는 관계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통계를 안 내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수천 수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예수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수 만명 훨씬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고 복음을 들었던 사람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교회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선데이 크리스챤으로 적당히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이 교회를 와서 드디어 영의 눈이 떠고 다시 중생함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제자훈련을 통해서 여러분 이 교회서 내가 누구라는 것을 드디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나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백성으로 주님의 소명을 받은 제자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음으로 인생관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세상관이 바뀌어서 여러분 자신을 헌신할 작정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23년 전대각성 전도집회를 처음 했을때 우리 성도들이 믿지 않는 남편, 믿지 않는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앉혀 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초청을 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듣고 영접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남편이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믿기로 작정합니다. 그것을 본 부인들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끼며 감격하는 모습을 저는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수년전에 대각성전도집회때 드디어 예수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수가 2,000명이 넘어섰을 때 우리 교회 교역자들이 얼마나 감격했는지 마지막날 저녁 집회가 끝나자 마자 그들이 마당에 둘러서서 자기도 모르게 누가 하자고 한것도 아닌데 두 손을 들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 소리를 듣고 저도 사무실에서 달려나갔습니다. 함께 손잡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때가 어꺼제 같은데 여러분 그렇게 복음의 교제를 나눈 형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교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는 끊어집니다. 부모 자식 사이도 끝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이 세상의 관계도 나중에는 헤어짐으로 또 갈라지고 맙니다마는, 사랑의교회를 통해서 또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복음의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의 모임은 성도들의 관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점점 점점 주님의 제림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의 교제는 더욱 무르익어 갈 것이고,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영원토록 헤어질 수 없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 모두가 사랑의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도 바울의 마음에 있던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과 감사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과 함께 선한 싸움을 싸운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좀 어려운 말씀이 나오는데 보세요.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그 다음의 내용을 잘 보세요.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매임이라는 것은 쇠사슬을 차고 옥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쇠고랑을 간수하고 함께 차고 있지 않습니까?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여기서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바울이 곧 황제 앞에서 제판을 받게 됩니다. 변호사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황제 앞에서 변호해야 합니다. 외로운 변호요. 외로운 법정 싸움입니다만, 그는 황제 귀족 앞에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확정함이라는 것은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네로가 이렇게 해서 내가 죽임을 당하던, 네로가 이렇게 해서 내가 살아서 나가든 그것과는 관계없이 나는 황제 앞에 복음을 전해야 되는 사람이고, 제판관들과 모든 귀족 앞에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 되심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재판정에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확정한다는 말속에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쇠고랑을 차고 재판을 받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가 죽지 않고 북음을 전하는 이 일에 이것을 묶어서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 영적 싸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만이 싸울 수 있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바울이 지금 싸우고 있는데 가만히 빌리보 교인들이 생각해보니 자기 혼자 만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도 자기와 함께 선한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울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회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10년이 지났는데도 빌립보 교회는 점점 점점 더 부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 생활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푼푼히 헌금을 모아서 자기의 지도자 ‘에마브로 디도’의 손에 들여서 저 멀리 로마 감옥에 보냈습니다. ‘바울이 아쉬울 것이 많을 텐데 쓰도록 전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 빨리 돌아오지 말고 그 감옥에 같이 있으면서 바울 선생님을 좀 돕다가 오세요’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니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선물들을 받고 보니 선한 싸움을 자기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감사가 넘쳤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지난 25년을 돌아보면 우리도 영적으로 엄청난 전쟁을 싸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혼자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가정에 부부간의 행복을 얼마 동안은 날려버려야 되는 기막힌 경험도 했을 것입니다. 친구들도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도 여러분의 환경에서 왕따를 당하는 수모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한번 마음속에 모신 예수님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엄청난 선한 싸움에 직면했습니다. 12명이 모여서 시작된 교회가 교회당을 짓기 위해 대지를 사는 것이 쉽습니까? 교회당을 짓는 것이 쉽습니까? 여러분 생각 해보십시오. 복지관을 짓고 소망관을 구입하고 또 수양관을 또 훈련센터를 이런 것을 만들면서 우리 사역을 넓혀 가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이럴 때에는 우리가 힘들게 번 돈을 헌금으로 바쳐야 하찮아요?

여러분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사명 때문에 바친다는 그 생각 때문에 아까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내어놓을 때 마귀가 우리의 욕심을 충동질하며 얼마나 많은 선한 싸움을 우리에게 걸어왔습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싸웠습니다. 이겼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사랑의 교회가 있습니다. 헌금내기 싫어서 도망갔던 사람들은 이 영광된 자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도 돌리고 선한 싸움도 싸워 이겼습니다.

어떤 자매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대에 암에 걸려서 운명직전입니다. 저는 그저 조용히 그 옆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다가 남편을 보고 이리 오라고 합니다. 남편은 믿지 않은 사람입니다. 남편은 고급 공무원이었습니다. 남편이 부인 입에다 귀를 대니깐 부인이 꺼져 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내가 당신한테 한가지 잘못한게 있어요. 사랑의 교회 건축하는 데 내가 당신 모르게 2백만원을 헌금했는데 그런데 아직 내지 못했어요. 당신하고 협의하지 못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거에요. 그러나 여보 내가 죽어도 내 대신 2백만원 꼭 내여 주세요. 약속해요?’

그 장면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죠. 선한 싸움이죠. 이런 싸움이 어디 있습니까? 남편이 그럽니다. ‘내가 꼭 낼게, 꼭 낼게...’ 아내가 세상 떠나고 나서 남편이 2백마원을 들고 그리고 아내를 기념해서 피아노 한 대를 사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교회를 짓다가 교회가 붕괴되기도 했습니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죽자살자 방해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달 밤낮 잠을 자지 못하고 뛰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싸움이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인하나 ‘네 탓이요, 네 탓이요’ 말하지 않고 우리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그 악한 사탄의 세력을 대적해서 우리 모두가 이겼습니다.

아마 사탄이 저의 건강을 공격했던 1989년도가 가장 어려웠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사정없이 저를 꺼꾸러 뜨렸습니만 그래도 우리 성도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밤낮 없이 부르짖어 그 어려운 시험을 이기는 데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25년 동안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전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찐한 전우애를 느낍니다. 이 전우애을 느끼면서 여러분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여러분 사랑의교회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에게 찬양과 경배를 돌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싸움은 사탄과의 싸움은 혼자 싸워서는 안됩니다. 혼자 싸우면 열 번이면 열 번 다 집니다. 교회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의 권세가 사랑의 교회를 이기지 못히라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신 선언이 있고 교회에 마낀 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싸우면 우리는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깁니다. 이런 선한 싸움을 함께 싸울 수 있는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영광과 찬양을 돌려야겠습니다.

세 번째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서로 중보기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하는 특권을 서로가 누릴 수 있었다는 것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바울이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사랑에 실패하면 전부 실패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랑이 풍성해지기 위해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하고 주님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도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실패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인생을 살 때 껍데기만 남는 인생을 살 수도 있고 알곡이 가득한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의의 열매로 가득한 인생을 살수도 있고 열매 하나 없는 쭉정이만 있는 인생을 살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처럼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 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장사해서 배로 남겨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니 바울을 이런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며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평생 이것 한 가지만 기도했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합니다. 동시에 빌립보 교인들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바울을 위해서 밤낮 없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뭡니까? 서로 중보기도 해 주는 관계입니다.

교회가 뭡니까? 교회는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한스킴’이라는 위대한 신학자의 말을 다시 들어보세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각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나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형제들의 고통과 고난을 같이 나누며 그들의 죄짐을 같이 지며 매사에 같이 동거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며 그 대신 자기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지 않으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중보하는 사이입니다. 서로 중보하는 모습입니다.

저는 25년 동안 여러분의 기도에 너무나 많은 빚을 진 사람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저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주는지 제가 영적으로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실수했을 때 제가  함량이 부족해서 여러분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을 때 저 자신이 육신의 연약함을 자기고 몸부림 칠 때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며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있는지 제가 영적으로 느끼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의 얼굴을 잘 모르고 이름을 잘 모르지만 여러분의 제 가슴속에 담고 밤이고 낮이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특별한 사건들이 들리면 그 사람들은 기도 할때마다 그를 위해 간구할때가 자주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마음 속에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들은 기도의 제목은 저 자신이었다는 것을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너무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의 교회로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혼자 기도해 가지고는 큰 응답을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함심해서 기도하면 보좌도 움직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이제 돌아보면 여러분을 생각할때마다 후회가 아니고 감사요. 아픔이 아니고 기쁨이요. 부끄러움이 아니요, 자랑이 되고 있음을 저는 솔직히 고백함니다.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에는 감사가 넘칠 것이고 기쁨이 넘칠 것이고, 이 감사와 기쁨이 감미로운 환상곡이 되어 제 마음을 늘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저는 이 환상곡을 들으면서 이 자리를 물러납니다. 이제 사랑의 교회는 제2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정현목사님을 모시고 여러분들이 지난 25년보다 더 힘차게 더 큰 꿈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앞을 달려가야 합니다.

저와 함께 나누었던 복음의 교제를 이제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더 더욱 풍성히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저와 함께 열심히 싸웠던 선한 싸움을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여러분은 더 힘있게 더 신나게 싸워서 매일 매일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것처럼 새로운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기도로 똘똘 뭉친 공동체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이루시고 주의 이름을 받으시고 주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원히 돌아가는 그날까지 이 교회가 시냇가에 심기어진 나무처럼 주야로 청청하는 아름다운 은혜에 진원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실 때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춤을 출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전쟁터에 달려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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