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문 1
성경구절 : 창세기 50:22-26,51:1-3
설교제목 :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전도서3장 1-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천하의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2절에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입관예배를 드리는 고 000 님도 이 세상에 벌거벗은 몸으로 태어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한이 다하여 먼저 부름을 받으셔서 오늘 입관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보시는 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갈 때는 수의 한 벌 입히고,
관 한 개에 모셔서 보내 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먹고, 더 좋은 것을 입고, 더 많이 가지려고
얼마나 아우성입니까?
그래서 눅12장 16- 2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자에게
"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지적하시는 말씀을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땀 흘려 수고하여 쌓아 놓은 재물을 한 푼도 못 가지고 가니
어리석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생전에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봉사하고
하나님 나라에 상급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복음성가 찬양에도 보면 "땀 흘리고 애써서 모아놓은 재산 안고 가나 지고 가나
헛수고로다"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헛것이요, 많이 벌어도 죽음을 맞이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수의 한 벌, 관 한 개로 족하지요.
오늘 이 입관예배에 참석하신 유가족, 조문객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말 한 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지요.
우리 모두는 생의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부끄러움 없이 사시기 바라고
주님 오라 부르실 때 고 000 님처럼 떳떳하게 부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해와 같이 빛나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사고와 질병이 많은, 한시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강퍅한 세상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슬픔이 없고, 눈물이 없고, 애통이 없고, 아픔이 없고,
죽음이 없는 너무너무 좋은 그 나라를 사모하시며,
오늘 고 000 님은 먼저 가셨지만, 우리도 곧 뒤 따라 갈 때가 가까이 옵니다.
살전 4장 16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오실 때 고 000 님도 부활하시고
그 때까지 살아있는 우리도 혼연히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휴거 되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충성되게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시며.
최선을 다해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 가지를
꼭 알고 살아야 합니다.
1.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태어났고 그분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에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2. 내가 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천국 가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미국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천국 가기 위해서, 또 천국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연습을 잘해야 합니다.
훈련을 잘 받은 군인이라야 실전에서도 잘 싸워 승리할 수가 있듯이
이 땅에서 삶을 잘 살아야 실제 천국에 가서도 참 행복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은 천국에서의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기 위한 연습입니다.
3.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왔으니 다시 그리로 가야합니다.
욥기 1:21절에는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또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하나님의 형상을 도로 찾아야 합니다.
범죄 하므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도로 찾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땅에서 경작을 받아 악의 모습들을 다 뽑아 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받아 깨끗한 모습으로 주 앞에서야 하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날까지 계속 경작 받아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살전 5:22),
깨끗한 모습으로 주 앞에 담대히 서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어느 시에 부르셔도 떳떳하게 주 앞에 가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문 2
성경구절 : 요 11:1-14
설교제목 :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특별히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중에 더 사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았겠지만 일반 신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가정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가정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것을 가르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예수님께서 잠에 비유하는 이유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다시 예수님의 재림 시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부활되어서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 000 집사님 가정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가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고 000 집사님을 택하여서
이 가정이 예수님을 믿는 가정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그 마음을
주장하셔서 일생동안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집사님이라고 할 수 가 있습니다.
집사님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면서 늘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저 하늘나라를 생각하시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 000 집사님도 연세가 금년에 80이 되다 보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육신의 한계가 있고 또 그의 몸이 일부분이 약해진
부분이 있어서 그동안 늘 일터에 나가서 일하시다가 작년부터 건강관리도 하시고
쉬시다가 이렇게 몸이 병들어서 염려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듯이 고 000 집사님도 병이 들어서 이렇게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이 이로 인하여서 슬픔가운데 있고 특히 부인000집사님은 표를 내시지
안으려고 하시지만 임종예배 드리는 가운데 000 집사님이 많이 슬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고 000 집사님과 유족들이 이것으로서
이별되고 끝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관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사로가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살리심을 받아서 가족들이 함께 만났던
것처럼 또 고000집사님도 지금은 하늘나라, 저 좋은 곳에 들어가서
평안한 안식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우리가 모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큰 은총을 누리기 때문에 우리가 슬픔 중에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믿는 자들에게 마련해주시는 부활의 은총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위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시간이 잠자는 순간이라고 생각 합니다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은 근심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잠자는 것을
보면은 얼마나 행복해 보입니까?
특별히 병중에 고통 받는 분들 경우에는 몇 시간만이라도 평안한 가운데서
잠자기를 무척이나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병문안 갔을 때 여러 번 느꼈습니다.
고 000 집사님도 그동안 많은 고통가운데 지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그러한 세계 속으로, 잠자는 세계 속으로 ]
들어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정들 가운데서도 밤이 되면 서로들 모여서 이야기 하다가 시간이 되면
서로의 방으로 잠을 자기 위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이별하는 것처럼 슬퍼하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인사하고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만나 아침 식사도 하고 각자 일터로 나가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고 000 집사님과 유족들과 우리들과의 관계도 밤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것처럼 좀 더 긴 잠을 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고000집사님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또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 유족들 다 같은 부활의 몸을 입고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만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축복을
믿을 때에 우리가 슬픔가운데에 잠을 자는 거와 같은 마음가지고 소망 중에서
슬픔을 이겨나가리라 믿습니다.
제가 가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특별히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0년이나 어린 사라를 127세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75세나 살았습니다.
58년이나 일찍 데려갔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를 하나님께서 누구는
일찍 데려가고 누구는 오랫동안 지상에 남겨두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서 남겨서 외롭게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묵묵히 머리 숙여서 순종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 뜻이 있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을 믿어야 되고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고 000 집사님을 먼저 보내고 부인 집사님은 왜 남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의 남은 생애 동안에 고000집사님의 신앙에 따라 더 열심히
하나님 섬기고 남은 자녀들을 더 귀한 신앙으로 인도하는 임무가 맡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남은 생애 동안은 하늘나라를 위해서 내가 가야할 나라를 위해서 늘 준비하면서
고 000 집사님이 성경을 암송하면서 즐거워하였던 것처럼 부인 집사님도 성경말씀과
더불어 기도생활을 하면서 늘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가운데서,
예전에는 그와 같은 경지를 느끼지 못했던 더 큰 믿음을 가지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000 집사님이 참 복된 어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 개원동안 병원에서 입원해 있을 때 부인 집사님에게 온갖 정성을 받았습니다.
자녀들도 아버님께 정성을 다해서 잘해드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만일 고 000 집사님이 건강하게 일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면 유족들이 두고두고
아쉬움만 남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 효도 한번 못하고 좀더 잘 해드리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가셨다면
그러한 마음들이 있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고 000 집사님을 어느 기간 동안에 허약한 몸을 허락하셔서 쉬게도 하시고
자녀들로부터 일정한 효도도 받으시게 하시고, 아내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을 받게도
하시고 그러한 가운데서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항상 좋은 것을 베푸시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유족들 슬픔가운데 하나님께서 고인에게 유족들에게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을 때에
그와 같이 베푸는 은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하심과
선하심에 감사하시면서 슬픔을 잘 극복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유족들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서 열심을 다해서 잘 섬기고
00교회를 이어가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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