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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노래를 부르자[계 14:1-20]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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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노래를 부르자/ 14:1-20 (:1-5, :13-20)

 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린 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나는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은 음성이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음성은 거문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노랫가락과 같았습니다. 3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과 그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땅에서 구원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고, 그들에게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6 나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서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에게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과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 있었습니다. 7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의 근원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여라." 8 또 두 번째 다른 천사가 뒤따라와서 말하였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도시다." 9 또 세 번째 다른 천사가 그들을 뒤따라와서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짐승과 그 짐승 우상에게 절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 사람은 누구든지, 10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그 포도주는, 물을 섞어서 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부어 넣은 것이다. 또 그런 자는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11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과 유황의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영원히 올라올 것이며, 그 짐승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과, 또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12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13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인자 같은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이 선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서,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분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거두어들이십시오. 땅에 있는 곡식이 무르익어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은 분이 낫을 땅에 휘둘러서, 땅에 있는 곡식을 거두어들였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역시 날이 선 낫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는 불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천사였습니다. 날이 선 낫을 들고 있는 천사에게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날이 선 그 낫을 대어, 땅에 있는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를 거두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19 그래서 그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다가 던졌습니다. 20 술틀은 성 밖에 있었는데, 그것을 밟아 누르니 거기에서 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 피가 말 굴레의 높이까지 닿고, 거의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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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지만 찬송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 김 선교사님이 사역이 너무 힘들어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찾아와 하나님이 선교사님에게 전하라는 말이 있어서 왔어요!”하기에 혹 이단인가 조심스러웠지만, 말해 보라고 하였더니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다니엘 김 선교사에게 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발 힘들다는 말 좀 하지 말아라. 내가 더 힘들다.”하였답니다. 그 말을 듣는데 한순간 멍 하였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더랍니다. “이 정도가 힘들면 앞으로 어떻게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그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힘들다’ ‘죽겠다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13장에서는 사탄의 조종을 받는 짐승은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하여 사람들의 이마나 오른손에 666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인 계 14장에서는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 양의 이름이 쓰인 하늘에 있는 144천명의 성도가 등장합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늘의 광경을 교차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서 사탄의 공격을 받아 환란을 당하겠지만 결코 땅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지 말라,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하늘을 보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새 노래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큰 물소리 같고 뇌성처럼 강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십사만 사천 명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십사만 사천의 수는 실제 십사만 사천 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말하는 상징의 수로 셀 수 없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만 다니면 누구나 십사만 사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음행하지 않고 정결을 지킨 자이고,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이고, 입에서는 거짓말을 찾을 수 없이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결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닙니다. 삶이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에 천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첫 번째 천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고 했습니다. 둘째 천사는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에게 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고 경고하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추수 심판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날선 낫을 들고 추수하는 자가 둘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흰 구름 위에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이 선 낫을 들고 앉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또 하나는 역시 날이 선 낫을 든 천사입니다.

천사가 주님께 외칩니다.

:15 ”낫을 대어 거두어들이십시오. 땅에 있는 곡식이 무르익어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구름 위에 앉은 분이 낫을 땅에 휘둘러서, 땅에 있는 곡식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어 날이 선 낫을 가진 천사도 낫을 휘두르는데, 익은 포도를 추수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 틀이 밟히면서 엄청난 피가 흘러 나와 온 땅에 퍼져 나갔습니다.

피가 퍼져나간 넓이가 1,600 스타디온이라고 하였는데, 이 길이는 이스라엘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의 거리입니다. 한마디로 그 혹독한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드신 낫에 의하여 거두어진 알곡 같은 사람이 있고 천사가 휘두른 낫에 의하여 거두어져 포도주 틀에서 버려지고 밟히는 사람입니다.

알곡 신자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은 성도입니다.

포도즙 틀에 던져져 짓밟혀 으깨어진 사람은 짐승을 따르고 666표를 받은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알곡과 진노의 포도주 사이에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알곡 성도라는 자신이 없다면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주님께서 계 14장에서 주시는 메시지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무서운 것이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죄짓고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을 심판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과 유황의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영원히 올라올 것이며, 그 짐승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과, 또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고난을 당하다가 순교한 자들이 복됨을 선포하십니다.

:13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죽는 자가 복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 안에서 죽은 자가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분명히 고백하였기에 죽임을 당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죽음으로 더 이상 고난을 당하지 않게 되었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들이 당한 고난으로 인한 상이 뒤따르니 복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은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다 순교할 복을 받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순교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도 주 안에서 죽는 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주 안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 도망가거나 움츠러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악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대적할 때, 무서워 말도 못하는 심약한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면서도 싫은 소리 듣고 해코지함을 당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런 자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보낸 12 정탐꾼들이 돌아와 10 사람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단 두 사람뿐이었지만 담대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또한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만 부를 수 있는 노래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십사만 사천에 포함될지 아닌지는 그 찬양으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학 교수 스티브 브라운은 자신이 쓴 책 [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 서론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목회와 교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 고백, 지식들이 하나님에 대한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스티브 브라운 교수는 자신이 추구해왔던 진리가 마치 가사만 있는 노래와 같은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가사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지만 가사만으로 노래를 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교회와 신학교와 세미나에서 다시 가르친다면 가사가 아니라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복음과 성경에 대한 지식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종교의 영으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와 종교의 영으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열심히 성실히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실히 열심히 목회하니 나름대로 결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내면은 공허했습니다.

군목 시절 저는 군목 체질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군단장 표창도 받았습니다. 그런 저의 속마음은 빨리 제대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실히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한 것뿐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결국 문제를 일으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고민이 되었던 것이 교회에서 열심 있는 성도들이 왜 시험도 일으키는가?”하는 점입니다.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내게 십사만 사천의 성도가 부르는 그 노래가 있는가?”확인해야 합니다.

 

성도에겐 반드시 하늘의 노래, 찬양이 있습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찬양은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자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1에 보면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이 시온 산에 서 계신 어린 양과 함께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천상의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은 어린 양 예수를 바라보며 찬양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을 주목할 때, 우리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사만 사천의 무리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불러진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 한 밤중에 노래하였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노래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의 찬송’, ‘고난 중의 찬송그것은 오직 구원받은 성도만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지옥의 권세를 뒤흔들고 천군천사들을 심히 부럽게 하며 하나님을 황홀하게 하는 최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짧게 한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잠깐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때,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여 며느리가 임신을 하여서 너무나 기뻐하였는데, 검사 결과 뱃속의 아기의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족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낳기로 결정을 하고 매일 가정에서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아기를 안고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 순간놀랍게도 하나님이 새 심장을 만들어 주셨다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아이는 1시간 만에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그로인해 너무나 슬퍼하는 아들 내외에게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답니다. "어떤 사람은 100살을 살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1시간만 살 수 있다... 둘 중 어떤 사람이 정말 잘 살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실거다." 아들 부부는 이 말에 위로를 받고 아기의 장례를 치른 후 도리어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한 밤중에 노래하였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 맞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두 사람만 있어도 영적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고난을 당한다고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말을 중단해야 합니다. 오히려 십사만 사천의 무리들만 부를 수 있는 고난 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고 감사합시다.

 

주님은 제게 삶은 쉬운 것이라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에 아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생각해 보니, 주님의 말씀이 옳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4에서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을 묘사하기를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4)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종 된 자는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고난 중에도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찬양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1.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 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기뻐 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우리 모두 찬양 할렐루 할렐루야 주님 나와 함께 계시네.

3.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

세상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

기뻐 찬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우리 모두 찬양 할렐루 할렐루야 주님 나와 함께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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