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종교
A. 종교는 보편 현상이다
인간을 가리켜 ‘숙명적으로 종교적인’ 존재라고들 해왔다. 이것은 한마디로 종교가 보편 현상이라는 말이다. 선교사들은 지상의 모든 민족과 부족 사이에 종교가 이런저런 형태로 존재한다고 증거한다. 종교란 인간의 삶에서 매우 현저하게 두드러지는 현상으로서. 이것이 인간의 영적 존재의 저 깊은 근원을 건드리고. 그의 사고를 통제하고, 정서를 자극하며. 행동을 인도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종교만큼 인류가 받은 큰 복도 없다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에, 더러는 종교만큼 세상의 삶에 유해한 것도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아무리 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종교가 개인들과 민족들의 삶에 항구적인 중요성을 갖고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려 깊은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종교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흄(Hume)조차 초자연에 대해 철저히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종교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라.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야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B. 종교의 본질
종교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시대에는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의 종교들과.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종교의 다양한 표현들을 연구함으로써 답을 구하려고 한다. 이들은 비교 연구에 의존하여 종교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려고 하며, 세계의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모든 형태의 종교들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고 고집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이 방법은 현재 세계에 나타나 있는 종교 생활의 형태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줄지 언정, 종교의 진정한 본질을 판단할 수 있게는 해주지 못한다. 오직 성경만이 올바른 종교 개념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관련되는데. 인간에게는 이 관계의 본질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를 명시하는 일은 하나님의 대권에 속한 일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인 말씀으로써 이 일을 하신다. ‘종교’(religion)라는 단어는 라틴어 렐레게레(relegere)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큰데, 이 라틴어는 ‘다시 읽다’. ‘반복하다’, ‘주의 깊게 관찰하다’라는 뜻이며, 신들을 숭배하는 데 따르는 모든 규정들을 항상 근실하게 준수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데 자주 쓰였다.
구약성경에는 종교(혹은 신앙)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경외’(敬長)는 이교들의 특징인 ‘공포’와 같지 않다. 물론 그러한 공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경외란 하나님께 대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존경하는 마음과, 불순종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두려워하는 태도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경외의 태도는 구약의 이스라 엘 백성이 율법을 받을 때 드러낸 반응에 잘 나타났다.
신약성경에서는 복음이 전면에 부각되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다소 다른 형태, 즉 ‘믿음’[신앙]이라는 형태를 띤다. 신약성경에는 종교를 뜻하는 다른 용어들이 있지만(이를테면 공경<godliness, 딤전 2:10〉, 경외<godly fear, 히 5:7>), 대체로는 ‘믿음’이라는 용어가 인간의 종교적 태도를 표현하는 데 널리 쓰인다. 믿음으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증거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 신을 계시하신 대로 우리 자신을 그분께 의뢰하여 구원을 얻는다 신약성경에는 신뢰의 요소가 크게 강조된다. 영광스러운 구속의 복음 앞에서 인간 측에서 내놓는 믿음[신앙]이 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길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된다.
성경의 빛에 힘입어 우리는 ‘종교,라는 단어가 인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뜻한다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사람들은 종교의 전형적인 요소를 경건. 두려움. 신앙. 의존감 등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을 존경할 때도 생기는 정서들이다. 종교만 갖고 있는 진정한 특징은. 사람이 종교에서 하나님의 절대 위엄과 무한한 권세를 의식하고 자신이 정말로 하찮은 존재이며 철저히 무능하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가 순전히 정서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 인간에게 단순히 부과된 필연이라는 뜻도 아니다. 종교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관계이며. 따라서 종교는 사람을 예속하는 대신에 가장 고등한 자유를 누리도록 인도한다. 종교는 하나님과 맺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영적 관계로서. 그 자체는 삶 전체로, 특히 예배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셔야 할 경배 (adoration)와 예배(worship)와 섬김(service)을 친히 정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자의적 예배는 절대 금지된다.
C. 종교의 자리
인간 영혼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자리에 관해서는 견해가 크게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중심적 중요성을 바라보지 못하며. 종교가 영혼의 기능들 가운데 단 한 가지 안에 자리잡고. 그것을 통해서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마음의 (psychical) 본질이 종교적 삶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강조한다.
1. 종교의 자리에 관한 일방적 견해들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자리를 지성(the intellect)에서 발견한다. 종교를 일종의 지식으로 불완전한 철학으로 간주하며, 그로써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께 관해서 갖고 있는 지식의 정도를 경건의 정도로 간주한다. 다른 사 람들은 종교의 자리를 정서에 둔다. 그들에 따르면 종교는 지식과 별로 혹 은 전혀 상관이 없으며. 다만 어떤 우월한 존재에 대한 의존감 일뿐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실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는 그분을 직접 의식하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종교가 의지에 자리를 둔다 고 주장한다. 인간은 내면에서 양심이 모든 행동 과정을 지시(dictate)하는, 명령하는 소리를 의식한다. 인간은 종교 안에서 양심이 명령하는 의무 들을 신의 명령으로 인정할 따름이다. 이 견해대로라면, 종교는 단순히 실 천적 도덕성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들은 종교가 인간 삶에서 차지하는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견해들은 성경에 위배되며. 심지어 현대 심리학과도 어긋난다. 왜냐하면 이 견해들은 인간 영혼의 근본적 통일성을 무시하고, 영혼의 한 가지 기능이 나머지 기능들과 따로 떨어져 작용할 수 있다고 추정하는 데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종교 안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언제나 전인(全人)이다.
2. 종교의 자리에 대한 성경의 견해
유일하게 정확하고 성경적인 견해는 종교가 마음(heart)에 자리잡고 있다는 견해이다. 성경 심리학에서는 마음이 인간의 총체적 윤리 생활의 중심이자 초점이며, 영혼의 인격적 기관(organ)이다. 마음으로부터 삶과 사 고와 의지와 정서의 모든 문제들이 나온다. 종교는 하나님의 형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형상은 자신의 모든 재능과 능력을 지닌 전인(全人)의 중심을 차지하며. 전인 안에서 자체를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전인에도 중심을 차지하며, 전인을 포함한다.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께 육신과 영혼으로 모든 은사와 재능을 다하여. 삶의 모든 관계들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다 구별해서 드려야 한다. 종교는 마음에 자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생각과 느낌과 의지를 지닌 전인을 포괄한 다. 인간이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은 마음이다(신 30:6; 잠 23:26). 종교에서는 마음이 지성을 통제하며(롬 10:13. 14: 히 11:6). 감정을 통제하며 (시 28:7: 30:12). 의지를 통제한다(롬 2:10, 13: 약 1:27: 요일 1:5-7). 전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지어졌다. 이것이 종교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최우선적인 중요성을 인정하는 유일한 견해이다.
D. 종교의 기원
종교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19세기에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현대의 종교 논문들에서도 여전히 크게 대조된다. 어떤 학자들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이 종교가 없는 존재로부터 종교적 존재로 발전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전환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 입증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비추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색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인간이 종교적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발견한다.
1. 종교의 기원에 관한 자연주의적(naturalistic) 견해들
어떤 학자들은 종교를 제사장[사제]들의 간계나 군주들의 술수의 산물로 간주했다. 그들이 무지한 대중을 장악하기 위해서 그들의 경신(輕信)과 두려움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물신 숭배(fetish-worship. 즉 신성하다고 간주되는 무생물적 대상들. 이를테면 돌, 막대기. 뼈, 발톱 같은 것들을 숭배하는 행위)를 고등한 형태의 종교들이 발전할 수 있게 한 씨앗으로 지목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영들 숭배. 아마 죽은 조상들의 영들을 숭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종교라고 주장했으며. 거기서 다른 모든 형태의 종교들이 점진적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좀더 널리 통용되는 견해는 자연 숭배가 점진적으로 종교를 낳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거대 하고 압도적인 자연 현상들 앞에서 약하고 무력하게 느끼며. 따라서 이 현상들 자체나 이 현상들이 겉으로 나타나는 배후에 감춰진 세력들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좀더 최근에는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든 마술에 대한 일반적 신앙에서 진화했다는 견해가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들은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론들은 사실들에 모순되는 추정, 즉 인간이 원래 종교 없이 지냈던 존재라는 추정 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러한 비종교적 인간은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종교가 생성 과정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 이론들은 순전히 자연주의적 추정, 즉 종교의 가장 낮은 단계의 형태가 필연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종교란 순전히 자연주의적 진화의 결과라는 추정으로 이어진다. 이 견해들은 인류의 종교적 삶에 퇴화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이론들은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점을 추정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만적인 사제들. 물신 숭배나 영혼 숭배. 좀 더 고등한 세력에 대한 의존감, 그리고 자연 세력들의 배후에 어떤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사상, 이런 것들이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이미 종교의 현상들이다.
2. 종교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 견해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종교의 기원에 관해서 밝히 비추어 줄 수 있다. 특별 계시는 종교가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그 설명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인 식하게 해준다. 만약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없는 참 종교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종교가 실재(reality)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만적 환영(幻影)으로서. 현실에는 어떤 실질적 가치가 있을 수 있으나 종국에는 실망을 안겨주고 말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필 요가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이 없었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종교적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은 철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이러한 계시로써 친히 기뻐하시는 예배와 섬김을 결정해 주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을 계시하셨을지라도 만약 인간에게 그것을 이해할 능력과 그것에 반응을 나타낼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종교적 관계란 수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 본성 전체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의무로부터 그에게 부과되지 않았다. 인간이 먼저 종교 없이 존재했으며, 그런 뒤에 종교를 자신의 존재에 덧붙은 어떤 것으로 부여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능력들에 힘입어 하나님과의 사귐을 추구한다. 비록 지금은 그것을 그릇된 방식으로 추구하지만 말이다. 죄인이 적어도 원리상 하나님께서 받으실 가치가 있는 섬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영향을 받을 때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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