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8_금요철야 from sooyoungro on Vimeo.
지금이 기회입니다
20100108
본문 / 이사야 55:6~9
신명기 4장 29절에 보면,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아모스 5장 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살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중에 죄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때야말로 큰 은혜를 받을 기회입니다. 시편 32편 6~7절에 보면,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주를 만날 기회’는 죄를 깨달을 기회를 의미합니다. 죄를 깨달을 기회가 곧 주를 만날 때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다는 것도 모른 채, 죄 가운데 살다가 말합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신 증거입니다. 그때야말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악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모른다 하지 않으시고, 그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죄를 완전히 도말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죄가 아무리 많다 해도,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고,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는 기억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죄를 용서 받았으면 다시는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람에게 이야기해서 동정을 사려고 하거나, 인간에게 긍휼히 여김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은 죄를 많이 범했으면서, 남을 흉보고 괴롭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의 과오를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인간들은 누구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살 길이 반드시 열리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악한 죄로 인해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고, 모두 용서해주시고, 죽지 않고 살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고도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다 도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고민합니까?
탕자의 아버지를 보세요. 탕자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왔을 때, 탕자의 아버지는 그를 끌어안고, 그와 입 맞추고, 그에게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들이 돌아온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했습니다.
죄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것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도 받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다가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다가 은혜를 받으면, 우리에게 죄를 이기는 능력이 생기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기 때문에 자유함을 누립니다.
광야 길을 가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갈 때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목축을 할 수도 없고, 낮에는 아주 뜨겁고, 밤에는 매우 춥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독이 있는 불뱀과 전갈도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장 31절에 보면,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광야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밤낮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안고 광야 길로 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사막을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자기 발자국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셨다면, 그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제 발자국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다. 내가 너를 안고 여기까지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 가는 날까지 하나님께서 안고 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마세요. 우리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자꾸 광야만 보니 불안하고,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밤낮 원망 불평했습니다.
신명기 32장 9~12절에 보면,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보호해주셨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아직 날 줄 모르는 새끼는 파닥거리다가 땅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새끼가 땅에 닿기 전에 어미 독수리가 넓은 날개로 새끼를 받아서 올라갑니다. 그리고 또 떨어뜨립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자기 힘으로 날 때까지 그렇게 훈련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눈동자같이 지키기만 하시지, 왜 괴롭히시냐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꿈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을 떠나기만 하면, 한 달 안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돌게 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시련이 왜 필요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그들이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가나안 족속과 같이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나라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려면, 시련이 필요했습니다.
차고 매서운 바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붑니다. 이처럼 시험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시험을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다만 시험에 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시험에 빠집니까? 믿음이 약하고,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찬바람이 분다고 모든 사람이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몸이 약한 사람, 면역이 약한 사람은 금방 감기에 걸립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몸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찬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험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시험에 걸려 넘어집니다. 믿음이 약한 이유는 세상 욕심이 많아서입니다. 욕심 때문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시험이 와도,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련을 겪으면, 시련으로 인해 더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은혜 받을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웬만한 고난은 잘 참고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생깁니다.
시련을 통해 회개하다 보니 거룩해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통해 우리가 복 받을 그릇이 됩니다. 아무리 복을 받아도 교만해지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며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큰 일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인물들을 쓰실 때, 아무 시련도 겪지 않고, 평범하고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쓰시기 전에, 다윗을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을 때,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게 하셨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나에게는 왜 이렇게 시험과 고난, 문제가 많을까’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고, 축복 받을 그릇이 되게 하시고, 큰 일꾼으로 만드시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셨음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믿음의 시련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와도, 깨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 길을 가면서도 걱정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신학박사이신 김정준 목사님이 폐렴 말기가 되어 마산의 어느 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병원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1급에서 6급까지 6개의 병동이 있었습니다.
6급 병동에는 3개월을 살다가 죽을 사람, 5급 병동에는 6개월 살 사람, 4급 병동에는 1년 6개월 살 사람, 3급 병동에는 2~3년 살 사람, 2급 병동에는 잘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사람, 1급 병동에는 사망률이 20% 정도 되는 사람이 입원해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6급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앞으로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3개월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찬송을 불러주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6급 병동의 환자들을 주님을 대하듯이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자 5급 병동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5급 병동에서도 똑같이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1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4급 병동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도 1년 6개월 동안 죽지 않아 3급 병동으로 옮겨갔습니다. 3급 병동에서도 2년 동안 죽지 않아 2급 병동으로 옮겨갔고, 2급 병동에서도 죽지 않아 1급 병동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의사가 아무리 죽는다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시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죽는다 할지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적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삶의 목적을 재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왜 사는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은 아닙니다. 전도서 3장 12~13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길게 살든 짧게 살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항상 기쁨이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항상 행복하고 즐겁고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복된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분이 있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자기의 믿음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망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절망에 빠집니까?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4장 29절에 보면,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1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은혜를 사모해서 이 자리에 나온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복 있는 분입니다.
자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하러 오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복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신 분도 복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반드시 은혜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전화위복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장 29~31절에 보면,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항상 하나님을 앙망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는 분들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전화위복되어 문제 때문에 은혜 받고, 문제 때문에 믿음이 좋아지고, 문제 때문에 더 큰 복을 받을 그릇이 됩니다. 문제 때문에 주님을 닮게 되고,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큰 일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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