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인간적이신 예수 (누가복음 5:17-26)
예수님 당시에도 중풍은 흔한 질병이었고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만 말씀하시고,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면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과연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까요? 또 곁에서 지켜보던 서기관들은 예수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중풍병자를 앞에 놓고 죄만 사해 주시고 그대로 나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가 가르치고 전파하는 곳에는 반드시 치료가 있었습니다. 죄사함을 받는 천국복음을 선포할 때마다 주님은 그 자리에 있는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악령에게 시달리는 자들을 놓아 주셨습니다. 원천적으로 볼 때 죄와 병, 죄와 악령, 죄와 재난, 죄와 죽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중풍병자는 단순히 병을 고치려고 예수께 달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죄용서를 받아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자연인한테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나타나는 영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풍병자는 병 고침을 받아 활개치며 걸어다시고 싶은 소원, 이것이 전부였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된 추측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영혼이 병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육신만 낫기를 바라느냐?'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거꾸로 '저희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세상적인 믿음임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점을 일컬어서 인간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영적인 것을 좋아하시고 영적인 사람을 사랑하시고 영적인 분야에서만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계실 동안 관심깊게 보시고 다루신 것을 연구하면 그는 대단히 영적이면서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하셨고 4일 가까이 제대로 먹지 못한 무리들을 염려하셔서 '만일 굶겨서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막8:3)"고 마음을 쓰셨으며 너무 피곤해 하는 제자들을 보시고는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영혼 구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 동안 우리가 병에서 놓이고 악령에게서 벗어나고 갖가지 고통에서 건짐을 받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동안 행하신 이적 기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가 오셨음을 증거하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이 완성되고 말씀을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무슨 이적 기사를 가지고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할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13:8). 또 영적인 문제보다 육적인 문제에 더 민감하고 육적인 고통을 더 앞세워 해결받기 원하는 연약한 질그릇임을 아십니다. 뿐만 아니고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를 방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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