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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큐티

이 것을 고백 하리이다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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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이 바울에게 말하라고 손짓하자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각하께서 몇 년 동안 이 나라의 재판관이셨던 것을 알고 이제 기쁜 마음으로 제 자신을 변호하고자 합니다. / 제가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12일밖에 되지 않은 것을 각하께서 조사해 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 저를 고소한 사람들은 제가 성전에서 누구와 언쟁을 한다거나 회당이든 그 밖의 도시 안 어떤 곳에서도 군중을 선동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고소한 내용을 각하께 충분히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 제가 각하께 이것은 시인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그 도를 따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 / 또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같은 소망을 두고 있으니 그것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낄 것 없는 양심을 지니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저는 제 민족에게 구제금을 전달하고 예물도 드리려고 여러 해 만에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 이들은 제가 성전에서 정결 의식을 행하고 예물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 주위에는 군중도 없었고 저는 어떤 소란에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 그 자리에는 다만 아시아 지방에서 온 몇몇 유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만약 저를 고소할 일이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고소 내용을 들고 여기 각하 앞에 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그렇지 않다면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라도 제가 유대 공회 앞에 섰을 때 무슨 죄목을 발견했는지 말해야 할 것입니다. / 저는 다만 이 사람들 앞에 서서 '내가 오늘 여러분 앞에 재판을 받는 것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라고 한마디 외쳤을 뿐입니다." / 그러자 그 도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벨릭스는 "루시아 천부장이 오면 그때 판결하겠다"라고 말한 뒤 재판을 연기했습니다. / 벨릭스는 백부장에게 명령해 바울을 지키되 그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필요한 것을 그의 친구들이 가져다주는 것도 허락하라고 했습니다. (행24:10-23,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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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둘로의 고소가 끝나자, 바울에게 변호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바울은 차분하고도 분명하게 논지를 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절 유대인들이 더둘로를 통해 총독에게 낯 뜨거운 찬사를 돌렸던 반면, 바울은 담백하게 그의 지위를 인정합니다. 이 재판이 변론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될 것을 알았기에, 마음을 속이면서까지 총독을 높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세상 권력을 두려워하여 비굴하게 자신을 낮추거나, 과도하게 상대를 높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존귀한 신분을 잊지 맙시다. 

11~13절 바울은 범법한 일이 없기에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변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세상에 비난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흠 없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와 공동체 안에 세상의 비난을 받을 만한 흠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고쳐나갈지 생각해봅시다. 

14~16절 유대인들은 바울을 이단으로 단죄했지만,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과 같은 하나님, 같은 성경, 같은 소망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넌지시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나는 믿음과 삶이, 소망과 태도가 일치합니까?

17~21절 바울은 적극적으로 변론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불법을 목격한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전에서 자신이 행한 일이 유대 법을 존중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나 공회도 죄목을 찾지 못했다고 변론합니다. 세상의 파상적인 비난과 공격 속에서 교회와 복음을 위해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사실과 변호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2,23절 벨릭스는 무죄가 분명한데도 판결을 유예합니다. 바울을 붙들어 두고 뇌물을 받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한껏 위하는 척, 자유를 주고 친구들의 왕래를 허락했지만, 실은 곤궁한 처지에 있는 약자를 착취하는 악한 권력자의 탐욕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웃의 곤경을 사익(私益)을 취할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기도
공동체-복음을 당당하게 선포하기 위해, 깨끗한 양심과 흠 없는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열방-미국 기독교 가정 자녀의 절반 정도는 성인이 되면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의 부모 세대 기독교인들이 자녀에게 신앙을 잘 전수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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