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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큐티

겸손한 왕의 입성

by 꿈꾸는 나무의자 201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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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사람들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몰려왔습니다. 이는 예수뿐 아니라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 그것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서 예수를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 다음 날 명절을 맞아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복이 있도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도다!" 하고 외쳤습니다. / 예수께서는 어린 나귀 한 마리를 보시고 그 위에 올라앉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네 왕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 제자들은 처음에는 이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 비로소 이 말씀이 예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도 예수께 그렇게 행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 또 예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을 때 함께 있던 사람들이 그 일을 증언했습니다. / 이처럼 무리가 예수를 맞으러 나온 까닭은 예수께서 이런 표적을 행하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보시오.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고 있으니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소." (요12:9-19,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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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자, 백성들은 환호하고 종교지도자들은 낙담합니다. 부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의미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5절 겸손과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흰 군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으로써 세상의 환호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그릇된 환상을 깨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남의 피를 흘려 군림하는 무력 혁명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서 자기 피를 흘리는 사랑의 혁명으로 새 나라를 세우실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부정의 십자가를 지면서 겸손과 평화의 길을 선택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9~11절 나사로는 살아나자마자, ‘죽음의 표적’이 됩니다.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했던(11장 53절) 대제사장들은 이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예수님의 부활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어, 그 때문에 믿는 자들이 더 많아질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은 성도가 되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가 빛이 됨으로써 더 진한 어둠이 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6절 유다가 마리아의 헌신(4~8절)을 호도한 것처럼, 제자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로마를 뒤엎고 이스라엘을 회복할 강력한 왕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에야, 그들은 그 행동이 예언(스가랴 9장 9절)의 성취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도 번영 신학이 주는 미혹에서, 반쪽 복음이 주는 아늑함에서 어서 깨어나라고 하시지는 않습니까? 

17~19절 무리가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할수록 유대 지도자들은 더욱 불안해합니다.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는 것이 두려웠고, 예수를 죽이려는 계략이 실패할까 봐 불안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라 자처하는 그들에게선 메시아에 대한 염원이나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은 안 보이고, 오로지 기득권을 지키려는 초조함과 체제를 위협하는 이에 대한 적대감만 보입니다. 내가 왕이 되기를 멈추기 전에는 예수님은 결코 나의 왕으로 환영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
공동체-겸손과 평화의 왕에 어울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열방-세계 말라리아 희생자의 감소세가 주춤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존 약에 대한 내성 때문이다. 신약이 속히 개발되어 말라리아 희생자 수가 다시 감소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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